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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한산이씨(韓山李氏) 16세 일등공신(一等功臣) 이덕기(李德沂) - 광해로 부터 인조의 목숨을 지킨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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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16세로 호장공 이윤경 선조님의 15대손이자 중시조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 문정공(文靖公)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조님의 목은9대손, 묵은10세(牧隱10世) 분충출기(奮忠出氣) 정난원종(靖難原從) 일등공신(一等功臣) 이덕기(李德沂) 선조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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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계흐름도상 한산이씨 호장공계 16세 선조이자 목은10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 문정공(文靖公)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조님의 목은9대손, 묵은10세(牧隱10世) 분충출기(奮忠出氣) 정난원종(靖難原從) 일등공신(一等功臣) 이덕기(李德沂) 선조님의 위치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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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기(李德沂) 선조님은 공편공(恭編公) 이유청(李惟淸) 선조님의 고손자이고 집의공(執義公) 이언홍(李彦洪) 선조님의 증손자이며 통훈대부(通訓大夫) 이계(李洎) 선조님의 손자이며 회승지공(澮承旨公) 이회(李澮) 선조님의 외아드님으로 한산이씨 권지호장공계 16세로 호장공 이윤경 시조님의 15대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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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기(李德沂) 선조님의 부인은 청주한씨(淸州 韓氏)와 단산이씨(丹山李氏) 두분입니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셨습니다. 장남 중연(선조을미~계해)은 29세로 후손없이 작고했고, 차남 충연(李沖淵, 1600선조경자년2월2일~1670을유년9월11일)은 안성군수룰 지냈습니다.
2.
첫 따님은 초서로 유명하고 선비로 존경받는 복천 강학년에게 출가했고 둘째 따님은 26세로 요절하며 학술가치가 높은 몽예집(夢囈集)을 남긴 사시자(謝施子) 몽예(夢囈) 남극관(南克寬, 1689~1714)에게 출가했으며 셋째따님은 나주정씨(羅州鄭氏) 정억(鄭憶)에게 출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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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직계표상 한산이씨 호장공계 16세 선조이자 목은10세이신 분충출기(奮忠出氣) 정난원종(靖難原從) 일등공신(一等功臣) 이덕기(李德沂) 어른의 위치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덕기(李德沂) 선조님의 고조, 증조, 조부, 부친은 앞서 직계흐름도에서 말씀드렸으니 옆 제 직계표상에 보이는 아들 손자 증손 고손 순으로 소개하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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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군수 이충연 (李沖淵) 어른, 열녀 경주최씨의 부군인 이창직 (李昌稷) 어른, 병마절도사 이수해 (李秀楷) 어른 그리고 상주영장 이사목 (李思牧) 어른이 아들, 손자, 증손자 그리고 고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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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이어 연산군수 이규첨 (李奎瞻) 어른, 절충장군 이원재 (李原載) 어른, 첨정 이원효 어른, 혜민원 주사 이승태 어른, 궁내부 특진관 성우공 이명직 어른, 평안북도 동면 면장 이철규 어른, 만주국 미곡검사관 이성구 어른, 제 부친인 창경궁 식물원장 방원 이성찬 선생등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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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기(李德沂) 선조님은 1573년, 조선(朝鮮) 선조(宣祖) 6년이자 명나라 만력(萬曆) 원년 음력 5월 25일 부친 이회(李澮) 선조님과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대감의 누이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외 아드님으로 출생하셨습니다.
3.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으나 외숙부인 오리 이원익(李元翼) 대감이 이덕기 어른이 과거에 급제한 후 지방관으로 나가게 되자 41개조에 달하는 목민관이 마땅히 지켜야 한다는 명나라 주봉길이 쓴 『목민심감(牧民心鑑)』의 내용을 서찰로 적어 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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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이덕기(李德沂) 선조님은 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대감의 서찰 내용과 『목민심감(牧民心鑑)』의 내용을 보완하고 편집하여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대감의 선각록(先覺錄)을 출간하여 후세에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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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조선(朝鮮) 선조(宣祖) 37년, 명나라 만력(萬曆) 32년의 선조실록 179권 윤9월 10일 정해 1번째 기사 내용에 “이덕기(李德沂)를 목천 현감(木川縣監)으로” 제수한다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때 목천현감이 되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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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1597년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던 홍산향교를 1610년 홍산현감 이덕기에 의해 중건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목천현감에 이어 1610년 조선(朝鮮) 광해군(光海君) 2년 명 만력(萬曆) 38년에는 홍산현감(鴻山縣監)을 지내셨음도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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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1613년 조선(朝鮮) 광해군(光海君) 5년, 명나라 만력(萬曆) 41년 2월 20일 광해군이 견재하는 왕자들을 참살하는 계축옥사(癸丑獄事)인 칠서지옥(七庶之獄)의 와중에 능양군을 보호하다 이이첨 등 광해군의 수하들로 구성된 자객들과 칼싸움 와중에 도검에 7곳이 난자되어 죽임을 당하여 41세의 나이로 작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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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계축옥사(癸丑獄事)인 칠서지옥(七庶之獄)이 무엇인지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608년 선조가 죽자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며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을 옥에 가둔후에 사사(賜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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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연이어 3살위 친형인 임해군이 사병을 모아 역모를 꾸민다는 이유로 강화도로 유배보내 1년뒤인 1609년에 사사했습니다. 그리고 1613년에는 계축옥사(癸丑獄事)를 일으켜 인목왕후를 폐비하고 김제남 일가를 죽이고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보내 불로 지저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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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에 명문가의 서자들과 서얼들이 스스로를 죽림칠현(竹林七賢), 강변칠우(江邊七友)라 부르며 결사하여 서얼금고(庶孼禁錮)의 폐지의 연명소를 조정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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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의 서자 박응서(朴應犀), 심전(沈銓)의 서자 심우영(沈友英), 목사를 지낸 서익(徐益)의 서자 서양갑(徐洋甲), 평난공신(平難功臣) 박충간(朴忠侃)의 서자 박치의(朴致毅), 북병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의 서자 이경준(李耕俊), 박유량(朴有良)의 서자 박치인(朴致仁), 그리고 서얼 허홍인(許弘仁) 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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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에 이 죽림칠현(竹林七賢)·강변칠우(江邊七友)가 문경세대에서 상인을 죽이고 은 수백냥을 강탈하는 등 화적질을 일삼자 붙잡아 광해군의 측근 이이첨이 감형을 미끼로 이 서얼들이 “선조와 계비 인목왕후의 아들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는 역모를 하려했고 그 주모자가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부친 김제남(金悌男)”이라 거짓자백을 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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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을 사사하고 그 3아들을 처형했으며 8살의 영창대군을 폐서인하여 강화도로 유배 보낸후 1년뒤 9살의 나이로 강화부사 정항(鄭沆)이 방에 불로 달구어 살해를 당했습니다. 이를 계축옥사(癸丑獄事), 칠서지옥(七庶之獄), ‘서양갑의 옥사[徐獄]’, 또는 ‘박응서의 옥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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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광해군 일파는 이때 선조가 아끼던 18살의 능양군이 “넓적다리에 사마귀가 있고 이는 한고조의 상”이라 임금의 자리를 넘볼수 있으니 능양군을 죽이자 작당을 했습니다. 이에 이덕기 선조님은 능양군에게 바보행세를 하게 하고, 동생 능창군의 신하노릇을 하게 하여 능양군의 목숨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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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613년 2월 20일 밤, 이를 감지한 이이첨 등 광해군의 수하들로 구성된 자객들과 칼싸움 와중에 도검에 7곳이 난자되어 이덕기 선조는 41세의 아까운 나이에 처참한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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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1623년 3월14일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성공한 능양군은 인조 임금에 오른 후 목숨을 구해준 이덕기 선조님의 공을 기려 이덕기 선조님을 분충출기(奮忠出氣) 정난원종(靖難原從)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추훈하고 강원도 관찰사에 추증하여 그 넋을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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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더하여 이덕기 선조님의 부친 이회 선조님에게도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겸(兼)경연(經筵)참찬관(參贊官) 춘추관(春秋館) 수선관(修選官)에 추증하고 이덕기 선조님의 모친인 선조.광해군.인조에 걸쳐 영의정을 지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어른의 누이인 전주이씨(全州李氏) 에게도 숙부인(淑夫人)에 추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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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부모 고조부모까지 4대 선조까지 관직을 추증하여 인조의 생명을 구한 이덕기 선조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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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기 어른의 묘소의 위치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덕기 어른의 묘소 위치는 고양시 도내동 인재공파 광목공 한산이씨 선영에 광목공 이숙야 선조 이하 후손 어른들과 함께 안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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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이계 어른 묘소 아래에 조성되어있습니다. 이곳 선영은 인재공파 후손들이 정성을 다하여 관리하고 있어서 그 어떤 가문의 선영 못지 않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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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덕기 어른의 묘소(墓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묘소(墓所)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능선에 단을 쌓고 그 위에 부인 청주한씨와 단산이씨의 묘와 함께 3개의 분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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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가운데로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그 옆으로 오래된 묘석과 광목공 종회에서 새로 만든 묘석이 나란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또 묘소 좌우에는 넉넉한 인상을 가진 문인석이 한 쌍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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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인재공파 세보에 나오는 이덕기(李德沂) 선조 어른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덕기(李德沂) – 자는 희점(字希點)이다. 선조(宣祖) 계유(癸酉)년 오월(五月) 이십오일(二十五日) 생(生)이다. 록(錄) 분충출기(奮忠出氣) 정난원종(靖難原從) 일등공신(一等功臣)이고 택배(擢拜) 조산대부(朝散大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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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行)홍산목천현감(鴻山木川縣監) 겸(兼) 홍주진관(洪州鎭管)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지냈다. 연산군 계축(癸丑)년 이월(二月) 이십일(二十日) 졸(卒)하니 수가 사십일(壽四十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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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증손인 이수의 징귀(以曾孫秀徵貴)로 증 통정대부(贈通政大夫)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겸(兼)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이고 묘(墓)는 고양(高陽) 은지첨산(隱池砧山)에 신좌유비(辛坐有碑) 홍산지의송덕비(鴻山誌依頌德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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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등신미이수관문전(有鄭等辛未移竪官門前) 배(配) 증숙부인(贈淑夫人) 청주한씨(淸州韓氏) 선공정백후여기(繕工正伯厚女忌) 구월(九月) 십칠일(十七日) 육일여묘부후배(育一女墓祔后配) 증숙부인(贈淑夫人) 단산이씨(丹山李氏) 목사지례 여기(牧使之禮女忌) 십이월(十二月) 이십팔일(二十八日) 묘차부(墓次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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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산이씨 16세 목은10세 분충출기(奮忠出氣) 정난원종(靖難原從) 일등공신(一等功臣) 이덕기(李德沂) 선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19편에서는 한산이씨 17세 목은11세 안성군수 이충연 선님조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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