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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祐 李命稙 大監 5

욕석집사(褥席執事) 이명직(李命稙) 임명

고종실록 1900년 광무4년 고종27년 7월 24일자의 내 고조부님의 내용을 살피다 보니 욕석집사(褥席執事)에 이명직(李命稙)을 임명한다고 나옵니다. 욕석(褥席)은 요와 자리를 말하는데, 임금이 외부 행사를 치룰 때 장막을 치고 이를 깔았다고 합니다. . 실록에 의하면 "(忠扈衛設幄於魂殿西階上, 東向; 奉常寺官設牀及褥席於幄內。) 충호위(忠扈衛)에서 장막[幄]을 혼전(魂殿)의 서계(西階) 위에 동향하여 설치하고, 봉상시(奉常寺)의 관원(官員)은 평상(平牀)과 욕석(褥席)을 장막 안에 설치한다."고 나옵니다. . 욕석(褥席)은 봉상시나 액정서(掖庭署) 등에서 설치하였으며, 자주(紫紬)나 홍릉(紅綾) 등으로 요(縟)를 만들고 남초선(藍綃縇) 등으로 자리를 만들어 썼는데, 이를 담당하는 욕석집사(褥席執事)가 따..

[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시인]

어제 컴퓨터를 켜니 "노작 홍사용 문학 기념사업회 이사장 홍일선입니다."라는 이메일이 한 통 도착해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올렸던 '노작 홍사용과 성우 이명직 어른'에 대한 게시글을 보고 '농부 시인 홍일선(洪一善)' 선생님이 보내오신 이메일입니다. 외롭게 조상의 흔적을 찾아 정리한 보람이라고 생각하니 바쁜 일과였지만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 인터넷 서치를 해보니 석농(石農) 홍일선(洪一善) 시인은 1950년 경기도 화성 동탄면 석우리 돌모루에서 태어나 1980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쑥꽃」 외 5편으로 등단한 중견 작가입니다. 홍일선 시인의 아버님이 노작 홍사용 선생님의 6촌 형제이니 홍일선 시인은 노작 홍사용 선생님의 7촌 조카로 민법상 8촌 이내에 해당하니 일가친척입니다. . 오래전 한국을..

조선의 예수

한국독립운동사는 대종교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왜 조선의 공자, 조선의 석가, 조선의 예수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조선, 석가의 조선, 예수의 조선이 되느냐"고 그 옛날 우리의 사대적 '식민 종교 행태'를 야단치셨습니다. 이명박의 반통일정책에 분개하여 자진하신 기장의 흰돌 강희남 목사님은 "예수가 이 땅을 쳐들어와도 나는 예수에 맛서 싸워 이 땅을 지키겠다"고 생전에 말씀하셨습니다. . 여기 일제와 미국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종교들이 미안해야 할 종교가 있습니다. 교도 10만여 명이 일제에 의해 살해당한 대종교입니다. 제 고조부 성우 이명직(1865~1915) 대감님과 같은 시대를 살다 가신 홍암 나철(1863~1916) 대선사님이 만든 대종교입니다. . 을사늑약 직전, 1..

성우(性祐) 이명직 선생과 노작 홍사용

'눈물의 왕' 홍사용과 화성 “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에서 ● 《백조》 창간과 선비정신 일제 식민치하, 나라가 있어도 내 나라가 아니었고 왕은 백성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이러한 시국에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지조를 지키고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고고하게 외치며 민족혼을 일깨우던 시인. 문예지 《백조》를 창간하고 ‘토월회’와 신극운동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가며 사그라져 가는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던 민족시인 노작(露雀) 홍사용(1900∼1947). 홍사용이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

나의 고조부 이명직 (李命稙)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18代孫(호장공25世, 호장공24代孫, 목은19세)

https://youtu.be/7-qAlQQM_rU [나의 고조부 이명직 (李命稙) - 한산군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 인재공파로 牧隱18代孫(호장공25世, 호장공24代孫, 목은19세)] 구한말 1894년(고종 31) 과거제가 폐지되고 마지막 진사시인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에 진사 3등(三等)으로 입격하신 후 1895년 2월 19일 탁지아문(度支衙門) 주사(主事)로 관직에 드셔 황해도 연안군수를 거처 1904년 10월 종2품 내장원경(內藏院卿), 1907년 종1품 궁내부 특진관등 고종황제의 측근에 계시다 고종퇴위와 함께 축출되었다. 조선제국이 종료(망한)후에 수원 동탄 돌머루(석우리)로 은거하시어 인척이었던 젊은이 노작 홍사용과 그의 친우들 월탄 박종화,빙허 현진건등 백조파의 문인들과 토월회등을 벌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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