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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이곡 6

10. 한산이씨 8세 인재공 이종학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8월 23일 임신 2번째기사 -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인재공 이종학 졸기 . 種學字仲文, 韓山伯 穡之次子, 天性英豪。 恭愍甲寅年十四, 中成均試, 僞朝丙辰, 中同進士, 遂拜長興庫使, 積官至密直司知申事。 戊辰, 掌成均試, 陞僉書密直司事。 己巳, 同知貢擧。 時李穡當國, 種學連歲掌試, 人頗譏之。 恭讓君立, 李穡見劾, 種學亦貶。 庚午, 尹彛、李初之獄作, 父子俱在淸州逮中, 以水災, 俱得蒙宥。 壬申, 又貶咸昌。 至是, 興宗至雞林, 欲行脊杖, 門生金汝知方爲判官, 陰戒吏不得行法外刑, 因是僅活。 移置長沙縣, 興宗遣人, 追至茂村驛, 乘夜縊之, 年三十二。 子六人: 叔野、叔畦、叔當、叔畝、叔福、叔畤。 . 종학(種學)의 자는 중문(仲文)이니, 한산백(韓山伯) 이색(李穡)의 둘째 아들이다. 천..

韓山 李氏 2021.09.18

7. 5세 광정대부 도첨의 찬성사 이자성

이자성 선조님은 정읍감무를 지내시던 1310년에 4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한살 아래인 울산출신 흥례이씨와 1278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세아들 배(培), 축(蓄), 곡(穀)과 따님 한분을 두셨습니다. 맏아들인 배는 과거에 올라 벼슬이 사복서승에 이르렀습니다. 둘째 아들 축은 일찍 죽었으며, 셋째 아들인 곡은 국가시험 수재과와 황조제과에 급제하였습니다. 따님은 장씨에게 출가했는데 어머니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남편인 정읍감무 이자성 선조가 죽은 다음 40년간 과부로 절개를 지켰습니다. 자질이 영리 민첩하고 자상하면서도 엄하여, 두 아들의 과거 공부를 뒷바라지해서 모두 출세하도록 하였습니다. 자식 이곡과 손자 이색의 공으로 말미암아 정읍감무 이자성 선조는 고려에서는 도첨의찬성사 원나라에서는 비서감승으로 ..

韓山 李氏 2021.09.11

8. 한산이씨 6세 한산군 가정 이곡 - 원나라 고려공녀공출을 폐지시킨 주인공

가정 이곡 할아버님의 첫 유언은 "아지자손 백대지친 (我之子孫 白代之親), 내 자손들은 백대를 넘어 일가친척으로 화목하게 화합하고 지내라"였습니다. 이유는 고려에서 한산 백제의 유민으로 차별을 당하고 고려 거자과에 급제하고 수재과에 차석을 하여도 시기와 질시 그리고 차별로 미관말직을 벗어날 수 없었고 원나라의 과거에 차석 하여 고위직을 지내도 고려에만 오면 이구실 저구실로 관직을 깎아내리고 이 트집 저 트집을 잡아 귀양까지 보내는 수모를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한산이씨 후손들은 시기와 질시로 귀한 사람을 흠집 내는 그런 삶을 살지 말고 한산이씨 후손 만큼은 서로 아끼고 화목하고 화합하라고 이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위대한 학자의 유언치고는 참 유치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고려에서 천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지금..

韓山 李氏 202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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