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26世) 25代孫(목은20세,牧隱19代孫) 이철규(李喆珪, 丁亥1887년11월22일~己未1919년10월6일, 수원 동탄면 석우리)는 성우공 이명직의 3남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07년 농상공부 광상조사기수교습소를 수업하고 대한제국 농상공부 금광국 기수(農商工部 金鑛局 技手)로서 해외 열강의 조선 잠식이 시작되던 그 혼란기에 조선의 금광등을 관리 하던 중책을 맡고 노심초사 했고 1914년 평안북도 희천군 동면 면장을 지냈다. 1916년 충청북도 청주군 노은면 문성금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919년 고종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다 일제에 부친 이명직과 4년 사이로 참살당한 애국지사였습니다. 부인 영일 정씨(迎日 鄭氏) 사이에서는 만주국 농림국 미곡검사관을 지낸 장남 이성구 와 밀양 박씨(密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