遲耘 金錣洙 先生

검은엿 한덩이가 만들어 준 명치대 법대 유학의 꿈

黃薔 2023. 8. 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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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명치대 출신 한창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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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함흥출신으로 김병로, 이인, 허헌 3대 인권 변호사와 더불어 독립지사들이 일경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때마다 수려한 변론으로 수많은 무죄방면을 이끌어낸 한창달(韓昌達, 1896년~1939년) 변호사는 1896년 7월 23일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풍상리(豊上里) 307번지에서 서당을 하는 아버지밑에서 여러 형제자매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인천부 내리(內里) 148번지 외숙부 유승흠(柳承欽)의 집에서 거주하며 서울법대의 전신인 경성법학전수학교 2학년을 다니던 한창달은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3월 5일 서울역에 도착, 서울시내 학생들이 주도한 남대문밖 역전광장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11월 6일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미결구류 90일을 포함 징역 6개월에 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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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로 경성법학전수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됩니다. 구한국 시대에 외숙부 유승흠이 나온 일본 명치대학 법학부로 전학을 가게 되어있었는데 유학은 물거품이 되어버린겁니다. 그래서 한창달은 검은엿 한덩이를 허리춤에 차고 일본인 교장집에 처들어가 단식농성을 하며 어차피 전학을 갈터이니 전학증을 발급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일본인 교장이 거부하자 단식을 감행했습니다. 배고프면 포기할줄 알았던 한창달이 한달이 넘도록 단식을 이어가자 일본인 교장의 부인이 남편을 설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교장집에서 학생이 죽어나가면 득보다 실이 크다고 부인이 교장을 설득한 겁니다. 결국 일본인 교장은 한창달에게 전학증을 끊어 주었습니다. 검은엿 한덩이가 한창달의 명치대 법학부 유학의 꿈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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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대 법학부 전문부를 졸업한 한창달은 바로 일본 변호사 시험과 변리사 시험을 동시에 합격하여 학교 교문에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명치대 법학부 학부출신들 조차 쉽게 합격하지 못하는 시험을 합격하였으니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같은 명치대 출신에 동향인 선배 허헌 변호사는 축하 전보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으로 돌아온 한창달 변호사는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재판에서 변호를 하였고 풀려난 독립지사들의 만주와 극동지역으로 탈출을 도와주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함흥청년동맹의 결성에 자문 변호사를 자처하여 1928년에는 그로 인해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습니다. 부인 유정숙(柳貞淑, 1898~1932) 여사는 일본사범학교 속성과를 마치고 함흥고녀 최초의 여고교사로 임용되어 부군 한창달 변호사와 함께 일제치하 함흥을 이끄는 지식인 부부의 역활을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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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반룡권번(盤龍券番)을 졸업한 경상북도 경주출신 가무악의 대가 문정(汶汀) 이말량(李末良, 1908~2001) 선생은 1926년 19살의 나이에 한창달 변호사의 인품에 반하여 후처로 결혼하기도 하였습니다. 1932년 34세를 일기로 작고한 한창달 변호사의 본처 유정숙 선생과 1939년 43세를 일기로 위암으로 사망한 한창달 변호사를 대신하여 자식들이 성장하여 남한으로 내려온 후 1947년 고향 경주로 돌아갈때까지 자녀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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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위암으로 1939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진 한창달 변호사는 작고하실때까지 일제시절 함경남도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인권변호사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으며 함흥청년동맹의 결성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애국독립지사 한창달 선생님의 손녀 한동춘(DC Lee) 여사가 제 외5촌당숙 이재연(Jay Lee) 선생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둔 제 당숙모이십니다. 오래전에 한창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당숙모에게 언뜻 들었다가 오늘은 당숙모의 고모이신 1929년생 한해경 여사님을 통해 한창달 변호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들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한창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더 모으고 보완하는데로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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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달(韓昌達, 1896년~1939년) 변호사 존영 (손녀 한동춘( DC Lee ) 여사 제공)
1931년 서울서 촬영한 한창달(韓昌達, 1896년~1939년) 변호사 가족 사진 - 좌로부터 부인 유정숙 여사, 큰딸, 아들(한태집), 한창달 변호사 작은딸 (한해경) (손녀 한동춘( DC Lee ) 여사 제공)
한창달 변호사 아드님 한태섭 선생 (따님 한동춘( DC Lee ) 여사 제공)
아드님 한태집과 함께한 한창달 변호사 부인 유정숙(柳貞淑) 여사님 (손녀 한동춘( DC Lee ) 여사 제공)
한창달 변호사 부인 유정숙 여사 어린시절 사진 좌에서 3번째 (손녀 한동춘( DC Lee ) 여사 제공)

한창달의 후처 이말량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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