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系譜

13世韓山李씨(執義公)彦洪(12代孫 목은7세 牧隱6代孫)

黃薔 2020. 3. 1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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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목은7세,牧隱6代孫집의공(執義이언홍 (李彦洪, 1479成宗10己亥~1546明宗1丙午7월23일, 묘소: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은지)은 공편공(恭編이유청과 목사 아령의 딸 경주이씨 사이에서 4남3녀중 차남으로 형 이언호는 사헌부 대사헌을 동생등은 세자익위사 죄익위를 지낸 이언식, 이언만이고 매부들은 한성부 판윤을 자냔 허흡과 호조판서를 지낸 공무공 장언량이 매부로 자(字)는 치천(穉川)입니다. 부인은 충주목사 권자후의 딸 안동권(權)씨이고 슬하에 2남 무주현감을 지낸 이소(李沼)와 충좌위호군을 지낸 이계(박)(李泊)을 두셨습니다. 압구정 한명회의 외동아들 양호공 한보의 처조카. 중종(中宗) 정축(丁丑)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보로 출사하여 관(官)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역임(歷任)하고 의금부(義禁府) 도사(都事), 종묘(宗廟) 서령(署令), 장체원(掌체院) 사의(司議), 충훈(忠勳), 경력(經歷), 첨정(僉正)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청도(靑道)군수(郡守), 통훈대부 행(行) 예천군수 겸 안동진관 병마동첨절제사를 제수 받았습니다. 증손(曾孫) 이유당 이덕수(李德洙)가 문과에 급제하고 인조반정후 강원도관찰사가 된 그 귀(貴)로 증(贈) 통훈대부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추증받으셨습니다. 수(壽) 68세를 누리셨습니다.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에 있는 예천군수 이언홍의 묘소다. 부친은 이과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정난공신 2등에 책록되고 의정부 좌의정을 지냈 던 공편공 이유청, 조부는 좌리공신 4등에 책록되고 의정부 좌참찬을 지낸 안소공 도옹 이훈, 증조부는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망월암 이축이 다. 공은 익제 이제현의 문인으로 정당문학을 지낸 문효공 가정 이곡의 7대손이며 문하시중을 지낸 문정공 목은 이색의 6대손이고 진현관 제학을 지낸 인재 이종학의 5대손이다. 또한 공은 세조를 보위에 올렸던 의정부 영의정 충성공 압구정 한명회의 외동아들 양호공 한보의 처조카다. 어머 니는 경주이씨로 목사를 지낸 이령의 딸이며 공은 4남 3녀 중 둘째로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이언호, 세자익위사 좌익위를 지낸 이언식, 이언만과 동기간이며 한성부 판윤을 지낸 허흡과 호조판서 공무공 장언량은 매부들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충주목사를 지낸 권자후의 딸이며 충좌위 호군 을 지낸 이계와 무주현감 이소는 아들이다.

 

목은 이색은 고려의 유신으로 남았지만 태조 이성계는 그 후손들에게 관직의 길을 열어주어 대대로 관직에 나갔던 가문에서 이언홍은 태어났다. 그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39세에는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음보로 출사하여 사헌부 감찰, 의금부 도사, 종묘서 령, 충훈부 경 력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는 외직으로 청도군수, 예천군수로 부임하였으며 6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언홍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비록 높은 관직에는 나가지 못하였으나 순탄하게 천수를 누리며 일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증손 이유당 이덕수가 문과에 급제하고 인조반정 이후 아경의 반열인 강원도 관찰사에 올라서 사헌부 집의로 추증되었다.

 

묘소는 도내동 한산이씨 선영에 증조부 이축 이하 후손들과 함께 안장되어 있으며 부친 이유청의 묘소 바로 아래쪽에 조성되어 있다. 이곳 선영 은 후손들이 굉장히 정성을 들여 관리하고 있어 어떤 가문의 선영 못지 않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묘소는 능선에 단을 쌓고 그 위에 부인 안 동권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고 봉분 가운데로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넉넉한 인상을 가진 문인석이 두 쌍 세워 져 있다. 봉분 앞쪽에 세워진 묘표는 이수문양의 머릿돌을 지니고 있으며 앞면에는 通訓⼤夫忠勳衛經歷李公之墓 라고 되어 있어 충훈위 경력을 지낸 이언홍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묘표 뒷면에는 가계와 행적에 대한 음기가 새겨져 있으나 오랜세월 마모로 인해 선명하게 알아 보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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