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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 23

17. 한산이씨(韓山李氏) 15세 회승지공(澮承旨公) 이회(李澮)

한산이씨 15세로 호장공 이윤경 선조님의 14대손이자 중시조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 문정공(文靖公)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년 음력 5월20일~1396년 5월20일) 선생의 목은8대손, 묵은9세(牧隱9世) 회승지공(澮承旨公) 이회(李澮, 1528 중종23년 9월17일~1597년 선조30년 12월 6일) 선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직계흐름도상 한산이씨 호장공계 15세 선조이자 목은9세이신 회승지공(澮承旨公) 이회(李澮, 1528 중종23년 9월17일~1597년 선조30년 12월 6일) 어른의 위치를 살펴보겠습니다. . 이회(李澮) 선조님은 안소공(安昭公) 이훈(李塤) 선조님의 고손자이고 공편공(恭編公) 이유청(李惟淸) 선조님의 증손자이며 집의공(執義公) 이언홍(李彦洪) 선조님의 손자..

韓山 李氏 2021.11.10

16. 한산이씨(韓山李氏) 14세 통훈대부(通訓大夫) 이계(李洎)

한산이씨 14세로 호장공 이윤경 선조님의 13대손이자 중시조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 문정공(文靖公)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선생의 목은7대손, 묵은8세(牧隱8世) 통훈대부(通訓大夫) 이계(李洎) 선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계(李洎) 선조님은 고려말 대학자 문정공 목은 이색 선조님의 7대손이고 진현관 제학을 지낸 인재공 이종학 선조님의 6대손이고 광주목사를 지낸 광목공 이숙야 선조님의 5대손이고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망월암공 이축 선조님의 고손자로 한산이씨 권지호장공계 14세로 호장공 이윤경 시조님의 13대손입니다. . 좌승지 이회 (李澮) 어른, 좌승지 겸 1등공신 이덕기 어른, 그리고 안성군수 이충연 (李沖淵) 어른이 아들.손자.증손자입니다. . 충좌위(忠佐衛) 호..

韓山 李氏 2021.11.04

10. 한산이씨 8세 인재공 이종학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8월 23일 임신 2번째기사 -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인재공 이종학 졸기 . 種學字仲文, 韓山伯 穡之次子, 天性英豪。 恭愍甲寅年十四, 中成均試, 僞朝丙辰, 中同進士, 遂拜長興庫使, 積官至密直司知申事。 戊辰, 掌成均試, 陞僉書密直司事。 己巳, 同知貢擧。 時李穡當國, 種學連歲掌試, 人頗譏之。 恭讓君立, 李穡見劾, 種學亦貶。 庚午, 尹彛、李初之獄作, 父子俱在淸州逮中, 以水災, 俱得蒙宥。 壬申, 又貶咸昌。 至是, 興宗至雞林, 欲行脊杖, 門生金汝知方爲判官, 陰戒吏不得行法外刑, 因是僅活。 移置長沙縣, 興宗遣人, 追至茂村驛, 乘夜縊之, 年三十二。 子六人: 叔野、叔畦、叔當、叔畝、叔福、叔畤。 . 종학(種學)의 자는 중문(仲文)이니, 한산백(韓山伯) 이색(李穡)의 둘째 아들이다. 천..

韓山 李氏 2021.09.18

9. 한산이씨 7세 한산부원군 목은 이색

고려 원나라 간섭기에 부친 가정 이곡 선생과 함께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토곤 테무르의 총애를 받았던 목은 이색 선생이 명나라의 등장으로 대국 명나라와 원나라 사이에서 권력투쟁에 골몰한 고려의 사림과 무림 속에서 양다리 외교술을 펼쳐 고려를 지켜내고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자신도 모진 고초를 치르면서 이성계의 5남 이방원이 장남과 차남의 참살함 지켜보기만 했지만 고려든 조선이든 대국의 속국은 만들지 않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이 행장을 통해서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 외부의 적보다 사리사욕에 젖은 내부의 시기와 질투와 모함이 가장 큰 위험임을 역사는 언제나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목은 이색 선조의 36세까지의 행장을 살펴보았습니다. 목은 이색 선조의 37세이후의 행장을 살펴보았습니다. +++

韓山 李氏 2021.09.11

7. 5세 광정대부 도첨의 찬성사 이자성

이자성 선조님은 정읍감무를 지내시던 1310년에 4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한살 아래인 울산출신 흥례이씨와 1278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세아들 배(培), 축(蓄), 곡(穀)과 따님 한분을 두셨습니다. 맏아들인 배는 과거에 올라 벼슬이 사복서승에 이르렀습니다. 둘째 아들 축은 일찍 죽었으며, 셋째 아들인 곡은 국가시험 수재과와 황조제과에 급제하였습니다. 따님은 장씨에게 출가했는데 어머니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남편인 정읍감무 이자성 선조가 죽은 다음 40년간 과부로 절개를 지켰습니다. 자질이 영리 민첩하고 자상하면서도 엄하여, 두 아들의 과거 공부를 뒷바라지해서 모두 출세하도록 하였습니다. 자식 이곡과 손자 이색의 공으로 말미암아 정읍감무 이자성 선조는 고려에서는 도첨의찬성사 원나라에서는 비서감승으로 ..

韓山 李氏 2021.09.11

8. 한산이씨 6세 한산군 가정 이곡 - 원나라 고려공녀공출을 폐지시킨 주인공

가정 이곡 할아버님의 첫 유언은 "아지자손 백대지친 (我之子孫 白代之親), 내 자손들은 백대를 넘어 일가친척으로 화목하게 화합하고 지내라"였습니다. 이유는 고려에서 한산 백제의 유민으로 차별을 당하고 고려 거자과에 급제하고 수재과에 차석을 하여도 시기와 질시 그리고 차별로 미관말직을 벗어날 수 없었고 원나라의 과거에 차석 하여 고위직을 지내도 고려에만 오면 이구실 저구실로 관직을 깎아내리고 이 트집 저 트집을 잡아 귀양까지 보내는 수모를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한산이씨 후손들은 시기와 질시로 귀한 사람을 흠집 내는 그런 삶을 살지 말고 한산이씨 후손 만큼은 서로 아끼고 화목하고 화합하라고 이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위대한 학자의 유언치고는 참 유치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고려에서 천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지금..

韓山 李氏 2021.08.28

방원 이성찬 선생

27년생인 작고하신 부친과 아직 생존하신 32년생이신 모친은 세월만큼이나 이런저런 훈장을 달고 사셨고 사십니다. 모친은 심장박동이 약하여 심장박동기를 단체 신경통으로 보행이 불편하시지만 다행히 정신이 맑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친을 작고하실 때까지 24시간 보살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며 자신의 집도 2체씩 있는 여동생이 기특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어 부친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 주었고 홀로 남으신 모친을 위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니 여간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시고 동작동 현충원에 영면하신 제 부친 방원(芳園) 이성찬(李盛粲) 선생님의 모습을 자손들을 위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아 업 겁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서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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