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춘연 4

신가정 잡지와 한글

(윤선 이춘연 여사의 일제하 조선말 말살정책에 대한 추억) 초등학교 2학년인지 3학년이었는지 싶은데. 조금은 늙으신 조선인 조선인선생님이 조선말을 이시간을 끝으로 배울수 없다시며 울고 조선어 시간을 끝 맺었다. 철없는 우리는 깜짝 놀래서 무슨일인가 했는데 집에 와서 호롱불 밑에 모여서 저녁상을 받고 식사하던 가족 앞에서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온 가족이 수저응 놓고 말았다. 우리는 그날부터 조선어공부는 끝이 났는데 집에서 한글을 배워야 했는데 일본말이 쉬워진 우리는 힘이드러서 집에 오는일리 너무 싫어서 중간에 놀고 또는 집에 와서도 앵두나무밑에 숨어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하루는 밀타작이 끝나도록 집에 드러가지 않고 있었는데 다 저문날에 아이가 없어졌다고 집안 사람들이 나를 찾고 있어서 다..

윤선 이춘연 2022.10.24

증조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 - 시계

한국뉴스가 미국 가쉽잡지에서나 볼만한 기사들을 마구 쏟아낸다. 그중에 하나가 신천지교주의 시계사진이다. 박근혜가 새누리국회의원들에게 주었다는 금장시계다. 그게 정말 기사거릴까? 너무 보도가 선정적이고 선동적이고 이것저것 추측과 추론을 늘어놓는다. . 지난 12월, 난 내 증조부가 문성금광을 했다는 눈이 소복하게 싸인 충주 금방산(국망산)을 내 각시와 오르고 있었다. 700고지의 산이 제법 가파르고 군대 군대 암벽에 밧줄로 이어진 곳도 있었다. 버려진 나무를 지팡이 삼아 눈싸인 밑에 낙엽싸인 길을 오르고 있었다. . 갑자기 지팡이 끝에 뭔가 툭하고 튀겼다. 시계였다. 제법 근사한 스위스제 티소트 시계로 백불정도 하는거였다. 아직도 열심히 초침이 돌고 있었고 상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날짜는 20여일이 앞섰..

李喆珪 先生 2020.03.07

옛날의 금잔디

내가 태어난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544번지에서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과 함께 서구식 화훼농장을 운영하시던 내 아버지 방원 이성찬 선생의 사진과 내 어머니 이춘연 여사의 사진이다. 난 1961년 박정희 쿠데타가 일어나던 해에 태어났다. 군인들이 지프며 트럭을 몰고 다니는 모습에 손을 흔들며 자라났다. 그 시절 내 부친은 꽃을 키우는 화훼원예를 전공하고는 창경궁 식물원과 원예시험장의 직장을 그만두고 한남동 그리고 부천군 소사읍에서 근교농업을 확산시킨다는 근사한 명분으로 화훼원예 농사를 지었다. '빛 좋은 개살구'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 끼니 걱정 속에 사는 사회 속에서 꽃을 길러 팔겠다는 발상부터 무모했던 거다. . 월사금 육성회비나 근근이 내면서 국민학교나 마치든가 했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