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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군 2

8. 한산이씨 6세 한산군 가정 이곡 - 원나라 고려공녀공출을 폐지시킨 주인공

가정 이곡 할아버님의 첫 유언은 "아지자손 백대지친 (我之子孫 白代之親), 내 자손들은 백대를 넘어 일가친척으로 화목하게 화합하고 지내라"였습니다. 이유는 고려에서 한산 백제의 유민으로 차별을 당하고 고려 거자과에 급제하고 수재과에 차석을 하여도 시기와 질시 그리고 차별로 미관말직을 벗어날 수 없었고 원나라의 과거에 차석 하여 고위직을 지내도 고려에만 오면 이구실 저구실로 관직을 깎아내리고 이 트집 저 트집을 잡아 귀양까지 보내는 수모를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한산이씨 후손들은 시기와 질시로 귀한 사람을 흠집 내는 그런 삶을 살지 말고 한산이씨 후손 만큼은 서로 아끼고 화목하고 화합하라고 이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위대한 학자의 유언치고는 참 유치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고려에서 천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지금..

韓山 李氏 2021.08.28

6世韓山李씨(韓山君)穀(5代孫 稼亭)

(6世) 5代孫 한산군(韓山君) 이 곡 (李 穀, 1298년~1351년)은 당대의 대문장가이며, 우탁(禹倬) 이동(易東), 아들 목은(牧隱) 색(穡)과 더불어 경학(經學)의 대가였습니다. 이곡은 1320년(충숙왕 7)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 제과(制科)에도 급제하여 원나라 중서성좌우사원외랑 (中書省左右史員外郞)과 한림 국사원검열(翰林 國史院檢閱)을 지냈고 충목왕 때 귀국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과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올라 한산군(韓山君)에 봉(封)해졌습니다. 고려의 꽃다운 처녀들이 원나라로 끌려가는 참상을 보고 원제(元帝)에게 상소를 올려 공녀를 데려오는 일을 그만두게 한 의로운 문신입니다. 자는 중보(仲父)이고 호는 가정(稼亭)이며 시호는 문효(文孝)입니다. 이제현과 함께 편년강목을 편찬하고 고..

直系譜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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