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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장공 3

3.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한 한산이씨 호장공 묘지에 관한 전설

호장공 이윤경 묘소에 관한 전설의 허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고려시대의 행정조직상으로 한산은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는 곳으로 그곳의 유력가문의 장으로 지방관인 호장을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를 적용받는 곳이었습니다. 호장공 이윤경에 이어 2세 정조호장 이인간, 3세 봉헌대부비서랑 이효진, 4세 봉익대부판도판서 이창세, 5세 광정대부 도첨의 찬성사로 전북정읍감무를 지낸 이자성까지 5대에 걸처 호장직을 세습했습니다. 하여 전설 속 “고을의 관청에서 심부름”을 했다는 것은 근거없는 소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고려호장(高麗戶長)은 마을의 우두머리로 그 마을의 대지주의 역할을 하는 자리인데 “매우 가난하여 근근이 살아간다”는 가설 부터 잘못된 기술입니다. 이는 단군조선의 사실 역사를 허구의 단군신화로 변조한 이마..

韓山 李氏 2021.08.17

1世韓山李씨(戶長公)允卿(1代孫)

(1世) 시조 이윤경 (李允卿), 호장공. [조선식민사관 정립을 위한 공작으로 제작 날조한 묘지에 관련된 전설] "고려시대에 한산이씨 시조 이윤경(李允卿)은 몹시 가난하여 고을의 관청에서 심부름을 하며 근근히 살았다. 이윤경(李允卿)은 어느날 관가의 현감이 앉아있는 마루에 널빤지가 매년 조금씩 썩어내려가는 것을 발견하고 습기도 없는 집에 마룻바닥이 녹아내리는 것은 분명히 명당의 지기(地氣)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들 이인간에게 자기가 죽으면 그곳에 몰래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 유언에따라 어둠을 틈다 관가의 마룻방 밑으로 뻗쳐맺힌 혈장에다 그의 시신을 암장했다. 그 명당에 발복으로 이곡(李穀), 이색(李穡)과 같은 명인을냈다. 이곡(李穀)과 이색(李穡)이 고려말 원나라에서 치르는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

直系譜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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