遲耘 金錣洙 先生

장덕수 구타 사건

黃薔 2022. 11. 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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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돌아오던 기내에서 박열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초반 박열이 속한 '불령사' 단원들에게 한 남성이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불령사는 일본 권력자들이 '못되다, 불쾌한 놈'이라며 조선인들을 조롱하며 쓰던 단어로 박열 등 아나키스트들은 오히려 이걸 자신들을 대표하는 단체 이름으로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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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 불령사를 설립한 박열은 같은 해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잠시 도쿄에 머물던 ‘동아일보’ 주필 설산 장덕수를 동료 5명과 함께 간다(神田)의 보정(寶亭)에서 구타했다. 구타 이유는 장덕수가 레닌의 코민테른 공산혁명자금 을 유용했다는 백범 김구와 김사국의 모함을 박열이 고지곧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이들은 구류를 살고 당시 교도소에서 간수와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영화엔 ‘동북아일보’의 김성철(문정수) 주필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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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장덕수는 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초대 주필로 발탁돼 조선노동공제회와 서울청년회를 조직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군축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초기엔 사회주의 항일운동가로 이름을 날렸으나 박열의 구타사건 이후 미국파로 전향했다. 광복 후 그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외무부장을 역임했다. 남한단독정부의 불가피함을 역설하다 1947년 서울 제기동 자택에서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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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장덕수는 상해파 고려공산당 창당맴버였고 코민테른에서 선발한 40여명의 서구유학생 중에 한명이었다. 김집 선생을 살해하고 코민테른 자금을 강탈하려했던 백범 김구를 옹호하는 무리는 아직도 진실을 오도하고 있다. 실제로 자금을 국내로 가지고 들어온 지운 김철수가 '장덕수가 아닌 최팔용에게 전달했고 그 자금은 신생활 창간에 사용되었다'고 증언했다. 전적으로 이소문은 백범 김구의 모함을 믿은 김사국 같은 청년·사회주의 운동권의 세력 다툼에서 나온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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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 자금을 집행했던 지운 김철수 선생을 대신하여 진실을 밝혀두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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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설산 장덕수 선생을 사회주의 혁명가에서 자본주의 미국파 민주주의자로 변신시킨 무정부주의자 박열 선생의 장덕수 구타사건 - 김구 선생의 코민테른 자금 강탈 미수사건 겸 김집(양춘산) 선생 암살 사건이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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