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운 김철수 14

지운 김철수 선생의 생전 서화보따리

주말에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중에 둘둘말아둔 지운 김철수 선생의 생전 서화보따리를 풀어 더이상 서화가 상하지 않도록 바인더에 차곡차곡 정리를 했다. 2폭 4폭 7폭 8폭 12폭 병풍용 서화포함 300여점까지 숫자를 세다가 포기를 했다. . 지운이라는 호를 쓰지 않고 김철수라 실명을 서화에 쓰기시작할때부터 모인 서화이니 족히 천점이 넘어가는 것 같다. 그중에 신문 스크랩도 하나 있다. 내 부친은 1989년 11월 24일자 한겨레신문 13면에 실린 이종찬 기자가 작성한 지운 김철수 선생의 전면기사를 오려 놓았다. . 수많은 지운선생 서화중에는 작고한 분들로는 의제, 남농, 구당, 석파, 옥산 선생 등과 나눈 서찰과 서화가 더러있고, 생존하는 분들로는 옥전, 동곡, 향설당, 등등 그분들의 서화도 더러 포함되어..

진정한 사회주의자 김철수 선생 vs. 2020년 자칭 운동권 한국의 사회주의자

지운 김철수 . 1912년 와세다 대학 정치실과에 유학후 조선의 해방과 새로운 조선은 사회주의에 있다고 판단 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사회주의 사상을 간직한체 살다 가셨습니다. 미주 독립자금 횡령과 조직원 살해미수죄로 김구주석으로부터 살해명령을 받은 이승만의 목숨구명을 위해 횡령자금을 코민테른 공산혁명자금으로 대납하여 이승만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해방초기 이승만의 집권을 위해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몽땅 죽일때, 김철수 선생은 '사상은 간직하되 시골 고향에 돌아가 정치를 접고 농사지며 조용히 살아간다'는 내용을 일간지에 광고하는 조건으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서는 유일하게 이승만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분입니다. . 사회주의 사상을 버리고 이승만에 협조했다면 남한사회에서 떵떵거리며 살다 자식과 자..

증조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 - 시계

한국뉴스가 미국 가쉽잡지에서나 볼만한 기사들을 마구 쏟아낸다. 그중에 하나가 신천지교주의 시계사진이다. 박근혜가 새누리국회의원들에게 주었다는 금장시계다. 그게 정말 기사거릴까? 너무 보도가 선정적이고 선동적이고 이것저것 추측과 추론을 늘어놓는다. . 지난 12월, 난 내 증조부가 문성금광을 했다는 눈이 소복하게 싸인 충주 금방산(국망산)을 내 각시와 오르고 있었다. 700고지의 산이 제법 가파르고 군대 군대 암벽에 밧줄로 이어진 곳도 있었다. 버려진 나무를 지팡이 삼아 눈싸인 밑에 낙엽싸인 길을 오르고 있었다. . 갑자기 지팡이 끝에 뭔가 툭하고 튀겼다. 시계였다. 제법 근사한 스위스제 티소트 시계로 백불정도 하는거였다. 아직도 열심히 초침이 돌고 있었고 상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날짜는 20여일이 앞섰..

李喆珪 先生 2020.03.07

[단독 발굴]서찰을 통해 본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 김철수 독립지사

초기 조선공산당 창립의 주역이고 스탈린의 코민테른에 조선공산당을 추인받고 레린의 40만 마르크의 혁명군자금을 집행했고 스탈린의 군자금을 수령했던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 김철수, 그는 무슨 이유로 북조선의 건국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남한의 시골에 칩거하며 여생을 마처야 했을까? 2018년 4월 한국에서 허겁지겁 급작스레 작고하신 내 부친 방원 이성찬(芳園 李盛粲) 선생의 상을 치르고 돌아왔다. 그리곤 10월에 휴가를 내서 홀로 남으신 어머니도 위로해 드리고 또 유품도 정리할 겸 한국에 들어갔다. 그때 가지고 돌아온 유품 중에는 내 부모님을 중매하셨던 지운 김철수(遲耘 金錣洙) 선생과 내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 간에 오간 세필 명필의 서찰들이 1945년부터 지운 김철수 선생이 작고하던 1986년 2월까지 1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