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系譜

9世韓山李씨(光牧公)叔野(8代孫 목은3세 牧隱2代孫)

黃薔 2020. 3. 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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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목은3세,牧隱2代孫 광목공(光牧公) 이숙야 (李叔野 묘소: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월하능마을) 인재공의 6남1녀중 장남입니다. 부인은 검교한성부윤을 지낸 강화봉씨(江華奉氏, 하음봉씨) 봉유인의 따님으로 슬하에 1남2녀를 두었는데 아드님은 망월암공 이축입니다. 공은 광주목사(光州牧使, 정3품)를 지냈습니다. 

 

우암 송시열이 지은 [광주 목사공 휘 숙야묘표] 승정 횡예엄무년 (1862년)중춘에 은진 송시열 지음. "우리나라가 개국하고 나서 고려조의 대가댁 자손 중에 어질고 뛰어난 자를 뽑아 등용하니, 공이 문보에 적을 두지 않고 사헌부, 사간원을 차례로 거처광주 목사의 벼슬에 이르렀다. 부인은 봉씨이니, 합장 하였다. 지금 10대손인 안사 수언이 추모하여 묘석을 세웠으나 워낙 먼 조상이라 자세한 사적을 얻지 못하였다. 공은 본관이 한산이니 위로 가정, 목은, 인재 세분이 증조부, 조부, 부 이고 아래로 감사인 축, 참찬인 훈, 의정인 유청이 아들, 손자, 증손자이다. 그후로는 더욱 번창하여 명공, 현재가 이어 나왔으니 선조를 받들어 후손에게 물려준 공의 덕을 징험할수 있으리라. 공은 인재공의 유언에 따라 벼슬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선대의 업적을 이어받아 능히 왕자(王者)의 길을 빛냈을 것인데, 겨우 한 고을의 목사로 국한되었으니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화관을 출입함에 이미 명성을 아루어 더욱 빛남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한산이씨에 어진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헛말이 아니다. 아아! 여기에 있으나 저기에 있으나 언제나 기리는것은 진실로 공의 어짐이요, 나라가 망함에도 온전하여 간택에 나가서 관직에 있는 것은 성조의 충후함에더욱 느낌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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