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공제회: 민족정기와 민족철학을 지키는 보루가 되자
흔히들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을 하거나 독재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설은 속설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현실이 되어 이곳 저곳에서 모습을 들어 낸다는데 그 슬픔이 있습니다.
제게도 일제시절 고창고보를 다니시다 광주학생의거와 관련한 학내문제로제적당하시고 어렵게 살다 가신 국가가 알아주지 않는 독립운동을 하신 외조부가 계십니다.
또 제 큰형 친구이자 집안 아저씨 벌 되는 속명이 이범구 (74학번, 용산고, 서울대 경제학과)라는 유신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인생의 방향이 틀려진 조계종 스님도 한 분 계십니다.
1980년, 대학 1학년의 어린 모습으로 전두환 군부에 의해 불법적인 연행과고문 그리고 감금으로 급조된 저의 운동권 이력은 한국사회의 3류 인생의 서막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던 서글픈 기억도 있습니다.
1988년, 도저히 그런 모습으론 살수 없어 어렵게 단수여권을 손에 쥐고 유학차 도미하여 지금은 미국연방공무원으로 살고 있답니다.
미국에서 공부한답시고 한국 군사정권의 종말도, 군사정권에 야합한 문민정권의 탄생과 그 종말도, 그리고 비록 국가부도 일보직전이라는 IMF의 처절함 속에서나마 출발한 민주정권의 시작도 지구의 반대편에서 풍문으로 설레는 마음만 가지고 접해야 했습니다.
그 동안 한국이 어느덧 인터넷 선진국으로 자리를 잡아 온라인을 통하여 참여정부가 탄생하는 모습은 생생하게 지켜볼 수가 있었답니다.
연전에 그 온라인상에서 ‘민주화운동공제회’를 조직한다는 소식은 제게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살인마 전두환이의 진정한 처벌이 없는 80518 민주화 유공자란 아무 의미가없다며 보상신청을 고사하신 동지들이며, 아예 유공자라는 칭호조차 바란바없다며 선비지조를 보이신 선배 ……
언제부터인가 제가 진정한 민주화 세력 이었다면 힘들고 가난한 동지들의모습을 외면 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해오던 차였습니다.
제가 ‘민주화운동공제회’에 참여하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데는 단 일초의 시간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민주화운동공제회’가 잘 운영되어 고생했던 동지들이 양질의 삶을 누리는데 일조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칠팔십년대 민주화 여정속에서 우리들의 옥고와 고문당한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많은 날들을 피눈물과 가슴에 한을 남기신 많은 동지들의 부모님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의 자녀들과 후손들이 살인마 전두환 일족보다는 양질의 교육과 혜택을 받았으면 합니다.
저는 미국유학을 통해 깨달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귀중한 가치를 우리 스스로 존중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존중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한국이 민주화된 부정부패가 없는 선진국을 만드는데 기여한 국가유공자들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민족정기와 민족철학을 지키는 보루들입니다.
우리들 스스로 상부상조하여 민족이 재통일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맑은 피를유지하여야 합니다.
‘민주화운동공제회’를 통해 우리의 존엄성을 슬기롭게 유지 합시다.
80518 민주화 유공자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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